경제논평

나는 2022년 대선 직전에 출간된 저서 《재정전쟁》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대통령이 연금과 교육 분야의 개혁에 불을 지피고, 이에 더해 노동개혁과 조세개혁까지 이룰 수 있다면 영조나 정조의 반열에 근접할 수 있다고 말했었다. 그만큼 개혁이 어렵다는 것을 반어법으로 표현한 것이지만 동시에 나라의 미래가 달려 있는 중요한 사안을 정치적 이해득실만 따지며 피해가는 집권자들을 걱정하는 시선도 담겨있는 말이었다. 

그런데 새롭게 정권을 잡은 윤석열 정부에서 출범 직후인 2022년 5월, 연금·노동·교육개혁을 새 정부 핵심 정책 과제로 선정했다. 개혁은 차치하고라도 일반 정책 수행의 관점에서도 그다지 준비된 것 같지 않은 대통령이 역대 정부에서 피해가던 개혁 과제를, 그것도 동시에 세 가지나 내세웠다는 점이 놀라웠다. 나중에는 정부개혁의 필요성도 추가했는데, 사실 이 중 무엇 하나 쉬워보이는 것이 없다. 

정치 지도자가 개혁이 가져올 미래 비전을 말하는 것은 좋지만, 이를 구체적인 정책 어젠다로 삼으려면 많은 고민과 충분한 준비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좋은 청사진이 필요하고 이를 구현시킬 전략과 동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이 책에서 강조했다. 제대로 된 개혁이 이뤄지면 그 열매가 몇 세대에 걸쳐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몇 년짜리 임기의 정권이 굳이 모든 것을 다할 필요가 없다는 점도 덧붙였다. 

이전 정권들은 연금개혁 하나 다루는 것도 버거워했는데 이 정부는 교육과 노동 분야까지 손을 대겠다고 하니 힘만 분산시키고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인적자원과 관련된 이 세 분야는 연계성, 보완성이 강한 영역이기 때문에 큰 틀에서 함께 다루는 것이 오히려 적합하다.

문제는 개혁을 다루는 방식이 일반 정책과는 달라야 한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다양한 개혁 과제를 해당 부처가 적당히 나누어 관리하는 기존의 백화점식 방식으로는 실질적인 성과를 내기 어려울 것이다. 예산이나 인력 등 정책 자원의 배분도 애매하고 정치적 지지를 모으기 위한 전략 수립도 힘들기 때문이다. 위원회 방식 또한 한계가 분명하다. 실질적인 권한도 없고 일을 제대로 해낼 예산이나 인력도 없는 위원회의 경우 잘 해봤자 부처 관료들에게 아이디어나 제공하는 집단에 머물기 쉽다. 이도 아니면 정권이 뭔가 일을 하고 있다고 생색내는 면피형 수단에 불과할 뿐이다. 

현 정권이건, 다음을 생각하는 정치 지도자이건 정말 나라 미래를 위해 단 한 가지 분야에서라도 가시적인 성과를 내려면 개혁 과제들의 성격과 정부가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을 냉철하게 파악해 목표의 우선순위를 설정하고 실천 가능한 전략을 구상해야 한다. 뜬구름 잡는 식의 추상적 목표만 나열하거나 너무 세부적인 사안 몇 개에 집착하는 방식으로는 아까운 시간과 자원만 낭비할 것이다. 저출산 정책의 과거 경험이 보여주듯 막연한 당위론만 앞세우며 부분적인 제도 개편이나 예산 투입에 의존하는 방식으로는 몇 발자국 못 나갈 것이다. 노동개혁은 아무리 합리적인 사안이라도 일단 이념 대립의 함정에 빠지면 타협이 불가능해지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연금개혁이나 교육개혁과 같이 전 국민이 이해당사자인 사안의 경우 정치적 이해관계나 따지는 나약한 의지로는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개혁에 필요한 재원 확보는 물론 날로 늘어나는 복지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서도 조세개혁은 필수이지만 언급조차 없다. 개혁의 주체를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 정부개혁은 위기와 같은 특별한 시점이라면 모를까, 평시에는 쉽게 다룰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이 책에서 제시한 것처럼 규제개혁을 통해 우회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현명한 방식이다.

결국, 하나의 개혁이라도 완수하려면 기존의 사고 틀을 바꾸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 책의 출간 시점 기준으로 집권 2년차를 마무리해가고 있는 윤석열 정부의 개혁 정책을 단정지어 평가하기는 이르다. 정치적 저항이 강하기 마련인 개혁 과제는 힘있는 정권 초기에 마무리해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틀린 얘기다. 이 책에서는 개혁의 골든 타임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개혁 과제의 성격에 따라 ‘청사진, 공론화, 정치적 타협’이라는 세 가지 개혁 공식의 시점과 지속 기간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청사진 하나만 제대로 만들어 ‘정권을 이어가는 개혁’의 단초를 놓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업적이 될 수 있다. 지난 수십 년, 개혁 같은 개혁을 본 적이 없었던 데에는 임기 내에 뭔가 마무리를 해야만 자신의 업적이라 여기는 이기적인 조바심이 한몫을했다. 하지만 집권 2년이 지나도록 분야별로 변변한 개혁 청사진이나 구체적 전략이 보이지 않는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하듯, 문제가 뭔지 모르면 해답이 나올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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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경제학자이지만 경제 문제가 정치나 사회 문제와 분리되기 어렵다고 본다. 이 책에서 다루는 연금, 교육, 노동, 인구 문제는 복잡한 연립방정식을 푸는 일이다. 정부와 시장의 역할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일차원적 사고 대신 정부의 힘과 시장의 힘을 함께 동원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러려면 각자의 전문화된 영역에서 벗어나 보다 입체적으로 문제를 이해하려는 시도를 해야 한다. 경제 문제의 상당 부분은 그 배경에 정치적 이해관계가 깔려있기 때문에 자신의 전문 영역 이론에만 강한 경제학자는 쉽게 접근하기 어려울 수 있다. 교육학자나 인구학자가 해당 분야의 지식은 풍부하겠지만 이들이 사교육과 저출산 문제에 대한 해답을 안다는 보장이 없다.

이 책은 우리 사회가 직면한 핵심 과제인 인적자원 분야의 4대 개혁과 이를 가능하게 해줄 정부 분야 2대 개혁을 포괄적으로 다룬 실험적인 시도다. 나의 전문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했지만, 이 책의 배경에는 우리 사회를 보는 일반인의 ‘상식’이 자리잡고 있다. 이는 해당 분야마다 존재하는 ‘고정관념’과 차별화된다. 흔히 개혁의 적으로 기득권의 고착화를 말하지만, 이 못지않게 개혁을 저해하는 것이 사고의 고착화다. 말로만 개혁을 부르짖는 정치인, 관료, 전문가들이 상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일반인보다 뭐가 더 나을까 하는 문제의식이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다. 단순히 6개 분야를 나열식으로 다룬 것이 아니라 모든 개혁을 관통하는 성공 공식을 잡아내려 했다. 개혁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실용적 관점에서 다룰 수 있는 체계적 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집필에만 수개월이 걸린 이 책의 원고를 마무리하면서 다시는 이런 방대한 과제들을 한 권의 책에 담는 무모한 시도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다만 각 분야별로 숱한 전문가들이 매달려 정해놓은 개혁 해법과는 조금은 결이 다른 제안들을 했다는 측면에서 나름의 보람을 느낀다. 한 번 더 강조하지만, 점진적 변화가 아닌 구조적 변화를 이루려면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 책은 구체적 정답을 찾기에 앞서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려는 혁신적 시도에 가깝다. 현실에서 먹히지 않는 뻔한 해법을 재탕, 삼탕하는 교육, 연금, 노동, 인구 분야의 개혁 논쟁에 이 책이 제시하는 실험적 해법이 자극을 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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